“하느님, 저에게 이집을 주시면 더 많은 영혼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영혼들을 위해 영적계획을 내놓으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적 인 것을 주신다는 신뢰심 밖에 없었지만 그 장소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1860년 12월 10일, 슈브리에 신부는 ‘라기요띠에르’의 평판 나쁜 캬바레 ‘프라도’를 얻게된다.

그는 이곳에서 초기부터 가졌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사제단’ 이란 이상을 간직한 채 우선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 즉 산업화에 종교교육의 기회를 빼앗긴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첫영성체 사업’을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항상 안배가 따랐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이 사업은 우선 가난한 사람들의 손으로 유지되고 그 다음에 부자들이 왔습니다. 이것이 복음에 적합한 순서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선 구유에서, 아주 보잘것없는 예물을 드린 목동들 틈에서 얼마를 보내셨고, 그 다음에야 지상에서 지체 높은 분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료로 운영되던 프라도집에 보이신 하느님의 섭리를 나타내는 말씀이다.

 

 슈브리에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게 하는 매우 독특한 사제양성 방법을 고안했다. 
프라도에 소신학교를 설립하면서부터 프라도사제회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슈브리에 신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연구이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배우는 데서 참다운 빛을 발견한다. 그 가운데 이미 완성되고 준비된 삶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찾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복음서를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사로잡혀 프라도사업과 사제양성에 전념했던 슈브리에 신부는 그토록 많은 일에도 불구하고 생애의 많은 시간을 복음공부에 할애한다.  

1879년 10월 2일 53세로 선종. 

1986년 10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