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누군가의 마음속에 누군가의 눈물 속에
지난주에는 매년 8일씩 하는 연피정을 다녀왔습니다.
충북 단양에 있는 ‘산위의 마을’이라는 곳인데
사람다운 삶과 생명의 고귀함을 잃어가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생명을 살리는 하나의 표징이 되고자 몸부림하는 사람들이
노인에서 어린아이까지 가족들 모두 함께
가산을 정리하고 떠나서 500m 골짜기에 마을을 이루고
농사일과 기도로 살아가는 가톨릭 첫 신앙공동체입니다.
스스로를 더부네(더불어 사는 사람들)라고 부릅니다.
지속적으로 견디며 사는 삶이 쉽지는 않겠지만 오래오래 버텨주기만 한다면
바람 앞에 놓인 등불처럼 아슬아슬한 우리네 세상에 한줄기 빛이라 여겨져
참 고맙고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거기서 지내는 동안
소백산 능선을 타고 빛살 그으며 떠오르는 아침 해와
뿌옇게 피어나 서서히 걷히는 산안개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에 담긴 하얀 뭉게구름과 스치듯 지나는 바람
하루하루 차오는 시린 상현달과 또록또록 밝은 별이 쏟아지는 골짜기의 밤
그리고 아무 시름없이 터지는 웃음으로 마당을 뛰놀다 해가 저물어
저녁기도 시간이 되면 수도승처럼 성스럽게 앉아 노래하는 아이들
조용하고 짧은 말소리로 가만가만 다니며 묵묵히 맡은 일을 하는 어른들로
한껏 맑아진 기분입니다.
나는 오전에는 내내 기도하고 오후에는 일을 거들었습니다.
비닐하우스에 배추도 심고 고추장도 병에 담고 산밤도 줍고 산국도 땄습니다.
베개를 만든다며 꽃송이만 따서 말리는 노란 산국이 예쁩니다.
우리 아이들과 샘들과 시끄럽고 바쁜 공부방도 좋지만
고요하고 더디게 돌아가는 ‘산위의 마을’도 좋습니다.
어제 공부방에 돌아오니 왠지 아이들이 늦게 오는 것 같아 기다려집니다.
오랜만이라 반가운데 아이들은 내 마음과는 달리 어제 본 듯 무심합니다.
문득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 원래 그러려니 하고 서운함이 이내 사라집니다.
그리고 건우가 지나가길래 뻔뻔하게 ‘수녀님 안보고 싶었어?’하고 물으니
‘아니요, 별로요’라고 대답합니다.
내가 담당하는 희선이와 준영이 민지만 반갑게 뛰어와 껴안습니다.
나는 약간 오바를 하며 우는 소리로
“수녀님은 너희들 보고 싶어 죽을 뻔 했는데 너희들은 어디 있었어?“ 하니
희선이가 으하하하 웃으며 “수녀님 머릿속에 있었지.”
“나는 너희들이 보고 싶어서 밤마다 엉엉엉 울었는데 너희들은 어디 있었어?”
“으하하하, 수녀님 눈물 속에 있었지.”하는 대답이 정말 시적입니다.
“누가 제일 보고 싶었어요?”
“엉엉엉엉, 그야 물론 희선이 준영이 민지 로사샘 건우......” 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녀석들 이름을 댑니다.
한참 호들갑스럽게 놀다가 낼 모레 시험을 본다기에 서둘러 공부를 시작합니다.
아무 일없이 국어문제집을 끝내고 수학시험 범위를 하는데
원의 중심, 지름, 반지름이 나옵니다.
민지와 준영이는 지름과 반지름이 구분되는데
희선이와는 또다시 산위마을에서 본 소백산만한 산이
앞에 턱 가로막힌 느낌입니다.
방금 전에 시적인 표현으로 한없이 귀엽던 희선이가
갑자기 돌대가리가 되어 답답해집니다.
“지름의 절반이 반지름이야. 절반, 반절 그래서 반지름이잖아.
왜 그렇게 몰르는거야, 응“
소리소리 지르고 책상을 두드리기를 거듭하고
다 이해하고도 희선이 때문에 잔뜩 쫄은 민지와 준영이는
혼날까봐 더욱 열심히 집중하고 희선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후
마침내 어느 정도 터득하니 희선이도 나도 다시 기분이 좋아져
나머지는 문제없이 풀고 돌아가고
민지가 엉뚱하게도 잘 풀던 수학 문제를 못풀어 또 다시 열받고
준영이와 민지가 숙제를 마저 다 마치니 9시가 넘습니다.
평온한 꿈처럼 고요한 일주일은 이미 멀리 떠나버리고
전쟁처럼 시끄럽지만 정겨운 나의 일상이 다시 펼쳐진 것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안에 고요하고 평온한 공간을 지어야겠습니다.
그래, 나의 머릿속에 나의 눈물 속에 너희들이 있듯이
너희들의 가슴 속에 너희들의 눈물 속에 나도 있고 싶구나!
2008. 10. 14 일기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