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버스 안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방금 전 부평농장에 출입국 단속이 나왔다고... 우리 노동자의 집의 둘도 없는 친구들 두 명을 데려갔다고 합니다. 당시 오후 근무가 끝나고 야근 시작 전 공장 앞에 서있던 로니가 먼저 체포되었고 공장 한편에 있는 간이부엌에서 밥을 푸던 코컨씨는 주걱을 떨어뜨린 채 그가 하던 고된 하루를 보여주듯 잔뜩 더러워진 작업복 차림으로 출입국 차량에 태워져 보호소로 실려 갔습니다. 족집게로 뽑아내듯 그렇게 차는 공장 앞에 멈춰 이 두 사람만 태우고 떠났습니다. 누군가의 신고가 있었음을 짐작케하는 부분입니다.
퇴근길 식사준비를 하려 잔뜩 장을 보아다 놓고 맥없이 주저앉아 한참을 그분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특히 제가 아는 코컨씨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공포 속에 떨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주사 바늘도 무서워 몇 번이나 의사선생님이 다시 찔러야할 정도로 겁이 많고 긴 한국 생활에도 조금도 ‘영악’해 지지 못한 사람이기에...
한 달 전에, 아침에 나란히 한 공장으로 출근한 베트남 부부는 점심녘에 남편이 공장으로 찾아온 단속반원에게 잡혀가는 바람에 작별인사도 못하고 그대로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미등록인 부인은 보호소 면회조차 갈 수 없어 제가 대신 필요한 것들을 챙겨다 드리고 마주보며 인사하고 돌아오는데 문득 그들 앞에 닥친 현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가슴이 먹먹했었습니다.
이 베트남 부부의 일처럼 저에게 있어 벌써 몇 번이나 되풀이되는 경험인데 전혀 익숙해질 수 없고, 미등록 노동자로 사는 그분들에겐 단속이란 언제고 닥칠 수 있는 일이지만 결코 연습되고 준비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단속되어 추방된 코컨씨에 대해 신파적으로 묘사하고픈 마음이 아니라, 단지 그에 대한 추억을 조금 풀어놓아야 우리의 슬픔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렇게 써봅니다.
그분은 우리 ‘노동자의집’ 식구들과 이곳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겐 마음 좋은 이웃집 아저씨이자 형님 같은 분입니다. 휴일엔 때때로 맛있는 방글라데시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사이다 한 병과 함께 펼쳐 놓고 맛있게 먹는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습니다. 일요일 오후, 모두들 우리 사무실에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는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슬며시 주중에 사놓은 로또 번호 두 개를 꺼내놓습니다. 모두들 잠시 그와 함께 소박한 꿈을 꿉니다. 또 그는 공장 옆 그의 콘테이너 보금자리에서 따뜻이 친구들을 맞아들였는데... 모두들 밖에 나오면 늘 발걸음이 그곳을 향했다며 이젠 없는 친구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또 그가 남겨놓은 공장 옆 텃밭에 심어놓은 호박과 고추들 역시 우리들처럼 그렇게 남겨졌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몇 년 전 큰돈을 들여 한국에 온 동생이 석 달 만에 단속되어 돌아가고, 두바이에 일하러간 또 다른 동생은 한 달 만에 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려 온 가족의 생계를 혼자 지고 있기에 이렇게 잡혀 돌아가기 너무 이르다며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은 마음 아파합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렇게 그의 삶의 자리에서 ‘치워져버린’ 그분이나 그렇게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친구를 잃어야 하는 우리 남은 사람들 모두에게 남은 빈자리는 그리 쉽게 채울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남을 것 같습니다.
인천 보호소나 화성보호소에서 만난 그는 눈물 가득 담긴 눈으로 계속해서 미안하고 고맙다고 합니다. 당신의 고된 노동이 필요했지만 이렇게 밖에 당신을 보내드릴 수 없는 이 나라 국민인 우리가 오히려 미안하다고 해야하는데...
지금쯤 다 커버린 딸과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사랑하는 부인을 만나 그래도 행복한 시간 보내고 있겠죠? 코컨씨 그래도 행복하세요.